<최인한의 일본 바로 보기> 메르스 사태 속 일본 가봤더니 … 대응 차분한 일본, '메르스 광풍'에 떠는 한국

입력 2015-06-18 17:27   수정 2015-06-19 07:05

메르스 대응 차분한 일본, 메르스 광풍에 떠는 한국
한국은 선진국이 될 준비가 됐나, 시민의식 성숙돼야




이름도 생소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가 급증한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일본을 다녀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신세를 진 일본인 교수의 회갑 축하도 하고, 살아나고 있는 일본경제 현장을 보고 싶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M교수는 한국, 중국 등 많은 동양 학생들을 석,박사로 키워냈다. 이들 유학생 출신들이 회갑연을 준비해왔다. 기자도 15년 전 일본연수 당시 1년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일본 서부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 고베시에서 예정된 회갑연은 외국 유학생들이 주도했다. 기자도 연초 회갑잔치에 초청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참석을 통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출발일을 일주일 앞두고 한국내 메르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일본 방문을 망설였다. 한국인 동료들도 일본 방문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통보해왔다.

이들의 전화를 받고 많은 고민을 했다. 30,40대인 유학생 출신보다 나이가 많은 기자가 가지 않는 게 맞는 건지, 약속을 지키고 참석을 강행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많은 고민 끝에 당초 약속대로 회갑연에 참석하기로 했다. 행사 주최측 지인에게 확인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소 사태에 섭섭해 하는 것 같다는 분위기도 전달받았다.

그래도 13일 출국을 앞두고 2,3일 전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메르스 확산을 우려하는 홍콩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에서 한국인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체온을 재고 한 사람씩 체크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위생에 특히 민감하고 모든 업무에 매우 꼼꼼한 일본인들의 특성상 입국심사가 다른 나라보다 더 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겼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체온을 일일이 검사하거나 개별 면담 후 입국 심사를 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 개인적인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일본 입국 때 후진국 국민처럼 대우받을 경우 ‘자존심’이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대한항공(KAL) 비행기를 탄 지 두 시간이 채 안된 오전 11시30분 간사이 국제공항에 내렸다. 공항 입국장은 비교적 한가했다. 입국심사 창구 앞엔 같은 비행기를 타고온 150여명이 전부였다. 입국 심사는 예상외로 간단했다.

입국 심사장에선 열과 기침이 나는 승객은 검역소에 신고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입국심사대 앞에서 한 직원이 ‘한국에서 메르스가 발생하고 있습니다’란 제목의 자그마한 전단지를 나눠줬다. 후생노동성 명의의 전단지에는 메르스의 증상과 치료를 소개하는 내용과 입국시, 입국후 증상이 나타날 경우 검역소나 보건소로 연락하라는 내용이었다.

비자를 심사하는 담당 직원도 별다른 질문 없이 여권에 바로 입국 도장을 찍었다. 지난해 11월과 올 4월 입국할 때보다도 입국심사 시간이 짧았다. 양국 관계를 고려해 언론인(?)이라고 편의를 봐준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입국 절차가 간단했다. 지난달 제대하고 워킹할리데이로 17일 일본에 들어간 아들도 입국심사 과정에 전혀 불편이 없었다고 알려왔다.

13일 저녁 고베시 일본식 호텔에서 열린 회갑연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한국에서 간 방문객을 회갑연 주인공과 가족, 친지들이 꺼려할까 우려했으나 적어도 겉으론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3일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NHK 등 공중파 방송과 주요 일간신문도 꼼꼼하게 챙겨봤다. 현지 언론들의 한국 관련 메르스 보도는 대부분 사실 전달로 차분했다. 방송에 나온 의료 전문가들은 메르스가 공기 전염이 되지 않으며, 건강한 사람들에겐 크게 위험한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일본에 오기 전 메르스에 대해 이유 없이 불안했던 기자도 일본에 묵으면서 심적 안정을 얻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6일 한국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의 지속적 사람간 감염이나 지역사회 감염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재확인했다. WHO는 17일에도 “한국의 메르스 유행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에 해당하지 않는다” 며 “현 시점에서 한국으로 여행이나 교역을 제한하는 조치나 입국 검사 등은 필요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16일에도 모 일간지는 ‘세계 각국, 한국 한국인은 기피대상’이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큼지막하게 실었다. 메르스를 치료하는 의료인이나 소방대원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동료들로부터 등교하지 말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는 뉴스도 들린다. 귀국 후 국내 언론 보도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메르스 공포’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았다.

메르스 사태의 발생과 확산 과정, 국가 혼란상은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현재진행형인 메르스 사태가 끝나면 우리는 지난해 세월호 사태처럼 또 한번 커다란 자괴감을 가질 것 같다.

한국은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까. 예기치 못한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허둥대고 과민반응하는 우리사회가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청와대와 관료 조직의 거버넌스 부재, 의료문제까지 정쟁화하는 정치권 혼란, 질방 예방 및 치료 등 의료 시스템의 후진성, 혼란을 부추기고 방조하는 일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 상당히 많은 국민들의 이기심 등이 얽혀 ‘메르스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 이상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겸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 janus@ha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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